전쟁·분쟁1861년 4월 12일 – 13일

섬터 요새 포격

다른 이름: 섬터 요새 전투

남군이 찰스턴 항구의 연방 요새 섬터를 34시간 포격해 항복을 받아 냈다. 링컨이 의용군 7만 5천 명을 부르면서 남북 전쟁이 시작되었다.

섬터 요새 포격, 1861년 4월 12–13일 — 커리어 앤드 아이브스 손채색 석판화, 1861년, 미국 의회 도서관
섬터 요새 포격, 1861년 4월 12–13일 — 커리어 앤드 아이브스 손채색 석판화, 1861년, 미국 의회 도서관

Currier & Ives. · Public domain · 원본

사우스캐롤라이나가 탈퇴한 뒤에도 로버트 앤더슨 소령의 연방 수비대는 찰스턴 항구 한가운데의 섬터 요새를 지켰다. 링컨이 식량만 보급하겠다고 알리자 남부 연합은 요새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1861년 4월 12일 새벽 보러가드 장군의 포대가 포격을 시작했다.

요새는 4월 13일 항복했고 수비대는 14일 물러났다. 포격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으나, 퇴거 의식의 예포가 터져 북군 병사 두 명이 죽었다. 링컨은 4월 15일 반란을 진압할 의용군 7만 5천 명을 불렀고, 북부는 깃발 아래 뭉쳤으며 버지니아 등 남부 4개 주가 더 탈퇴했다.

지도에서 보기

186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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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항복 —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관련 장소
섬터 요새, 찰스턴

관련 인물

  • 에이브러햄 링컨1809년 – 1865년

    관련자 · 미국 16대 대통령(1861–1865). 남북 전쟁에서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되었다

  • 제퍼슨 데이비스1808년 – 1889년

    관련자 · 미시시피의 정치가. 미국 육군 장관·상원 의원을 지냈고,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부 연합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861년 제1차 불런 전투

이 사건이 든 테마

  • 남북 전쟁1850년 – 1865년

    1850년 타협에서 링컨 암살까지 — 노예제를 두고 갈라선 미국이 4년의 내전 끝에 연방을 지키고 노예제를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