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57년 3월 6일

드레드 스콧 판결

다른 이름: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연방 대법원이 흑인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고, 의회는 준주에서 노예제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노예제를 둘러싼 타협의 길이 더 좁아졌다.

드레드 스콧 — 판결 무렵의 사진, 1857년 무렵
드레드 스콧 — 판결 무렵의 사진, 1857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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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드레드 스콧은 주인을 따라 자유주 일리노이와 노예제가 금지된 위스콘신 준주에서 여러 해 살았다는 이유로 자유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857년 3월 6일 연방 대법원은 7 대 2로 그의 청구를 물리쳤다.

로저 토니 대법원장은 흑인은 노예든 자유인이든 미국 시민이 아니어서 연방 법원에 소송할 수 없고, 노예는 재산이므로 의회가 준주에서 노예제를 금지할 수 없다고 썼다. 이미 폐지된 미주리 타협까지 위헌이라 한 셈이어서, 노예제 확대를 막으려는 공화당의 강령이 정면으로 부정되었다. 북부의 분노는 공화당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스콧은 판결 두 달 뒤 새 주인에게 풀려났으나 이듬해 병으로 죽었다.

지도에서 보기

185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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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
관련 장소
워싱턴 D.C.

관련 인물

  • 드레드 스콧1799년 – 1858년

    핵심 인물 · 노예로 태어나 자유주와 자유 준주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자유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857년 연방 대법원이 그의 청구를 물리쳤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법
이후 사건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남북 전쟁1850년 – 1865년

    1850년 타협에서 링컨 암살까지 — 노예제를 두고 갈라선 미국이 4년의 내전 끝에 연방을 지키고 노예제를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