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브라운
무장 투쟁을 주장한 노예제 폐지론자. 캔자스에서 싸웠고, 1859년 하퍼스페리 무기고를 습격했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독실한 칼뱅주의 집안에서 자라 여러 사업에 실패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평생 노예제를 죄라고 믿고 도망 노예를 도왔다. 1855년 아들들과 캔자스로 가서 노예제 찬성파와 싸웠고, 1856년 포타와토미에서 찬성파 다섯 명을 죽였다. 1859년 버지니아 하퍼스페리의 연방 무기고를 습격해 노예 봉기를 일으키려다 붙잡혀 처형되었다. 법정과 처형대에서 보인 꿋꿋한 태도로 북부에서는 순교자로, 남부에서는 테러리스트로 여겨졌고, 북군 병사들은 「존 브라운의 시체」라는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