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62년 9월 22일(예비 선언) – 1863년 1월 1일

노예 해방 선언

링컨이 반란 중인 남부 연합 지역의 노예를 영원히 자유롭다고 선언했다. 전쟁의 목적에 노예 해방이 더해졌고, 흑인 병사들이 북군에 들어왔다.

각료들 앞에서 노예 해방 선언을 처음 읽는 링컨 — 프랜시스 B. 카펜터 그림, A. H. 리치 판화, 1866년, 미국 의회 도서관
각료들 앞에서 노예 해방 선언을 처음 읽는 링컨 — 프랜시스 B. 카펜터 그림, A. H. 리치 판화, 1866년, 미국 의회 도서관

Ritchie, Alexander Hay, 1822-1895, engraver; Carpenter, F. B. (Francis Bicknell), 1830-1900, artist · Public domain · 원본

링컨은 앤티텀 전투 닷새 뒤인 1862년 9월 22일 예비 선언을 내고, 1863년 1월 1일 정식으로 선언했다. 전쟁 중 군 통수권자의 권한으로 내린 조치여서, 연방에 남은 경계 주와 북군이 이미 차지한 지역은 빠졌고 선언만으로 곧바로 풀려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북군이 나아가는 곳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다.

선언은 흑인의 북군 입대를 허락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8만 명의 흑인 병사가 싸웠다. 노예제 반대 여론이 강한 영국과 프랑스는 남부를 승인하기 어려워졌다. 선언의 한계는 1865년 수정 헌법 제13조가 노예제를 전국에서 없애며 메워졌다.

지도에서 보기

186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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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관련 장소
워싱턴 D.C.

관련 인물

  • 에이브러햄 링컨1809년 – 1865년

    핵심 인물 · 미국 16대 대통령(1861–1865). 남북 전쟁에서 연방을 지키고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암살되었다

  • 프레더릭 더글러스1818년 – 1895년

    관련자 · 메릴랜드에서 노예로 태어나 탈출한 뒤 노예제 폐지 운동의 대표 연설가·저술가가 되었다. 흑인의 북군 입대를 이끌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62년 앤티텀 전투
이후 사건
1863년 챈슬러즈빌 전투

이 사건이 든 테마

  • 남북 전쟁1850년 – 1865년

    1850년 타협에서 링컨 암살까지 — 노예제를 두고 갈라선 미국이 4년의 내전 끝에 연방을 지키고 노예제를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