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과 인도
춘추 전국의 제자백가에서 진·한의 통일 제국까지, 석가모니에서 마우리아·쿠샨 왕조까지 —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문명의 틀이 잡힌 천 년

춘추 전국의 제자백가에서 진·한의 통일 제국까지, 석가모니에서 마우리아·쿠샨 왕조까지 —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문명의 틀이 잡힌 천 년

| 연도 | 나라 | 사건 | 핵심 |
|---|---|---|---|
| 기원전 7–5세기 | 춘추 제후국 | 춘추 5패 | 존왕양이, 회맹, 제 환공 |
| 기원전 6세기 | 노 | 공자와 유가 | 인·예, 덕치, 『논어』 |
| 기원전 6–5세기 | 갠지스강 유역 | 불교·자이나교 성립 | 카스트 부정, 해탈, 크샤트리아·바이샤 지지 |
| 기원전 6–3세기 | 춘추 전국 | 제자백가 | 유가·도가·묵가·법가 |
| 기원전 403 | 전국 7웅 | 전국 시대 | 철제 농기구·우경, 청동 화폐 |
| 기원전 356 | 진(秦) | 상앙의 변법 | 법가, 군공 작위, 현제, 연좌제 |
| 기원전 322 무렵 | 마우리아 | 찬드라굽타의 건국 | 인도 첫 통일 왕조, 파탈리푸트라 |
| 기원전 3세기 | 마우리아 | 아소카왕 | 칼링가 정복, 석주·칙령, 산치 대탑 |
| 기원전 221 | 진(秦) | 시황제의 통일 | 군현제, 문자·화폐·도량형, 분서갱유 |
| 기원전 202 | 한 | 유방의 건국 | 해하 전투, 군국제, 장안 |
| 기원전 141–87 | 한 | 한 무제 | 유교 통치 이념, 염철 전매, 고조선 멸망 |
| 기원전 139 | 한 | 장건의 서역 파견 | 대월지, 비단길 |
| 기원전 91 무렵 | 한 | 사마천 『사기』 | 기전체, 「조선열전」 |
| 8 | 신 | 왕망의 신 | 왕전(토지 국유), 복고 개혁, 적미의 난 |
| 105 | 후한 | 채륜의 종이 | 채후지, 4대 발명 |
| 2세기 | 쿠샨 | 카니슈카왕 | 대승 불교, 간다라 미술, 푸루샤푸라 |
견융의 침입으로 호경이 무너지자 주 평왕이 도읍을 동쪽 낙읍(뤄양)으로 옮겼다.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고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춘추 시대가 열렸다.
주 왕실의 힘이 약해진 춘추 시대에 제 환공·진 문공 같은 강한 제후가 "존왕양이"를 내걸고 제후 회맹을 이끄는 패자가 되었다.
노나라의 공자가 인(仁)과 예(禮)로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우자고 가르쳐 유가를 열었다. 제자들이 그 말을 『논어』로 엮었다.
갠지스강 유역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카스트를 넘어 누구나 수행으로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쳐 불교를 열었다. 같은 무렵 마하비라는 자이나교를 열었다.
춘추 전국의 혼란 속에 제후들이 인재를 찾자 유가·도가·묵가·법가 등 여러 사상가(제자백가)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내놓고 다투었다.
진(晉)이 한·위·조로 갈라진 뒤 진(秦)·초·제·연·한·위·조 일곱 강국이 천하를 다투었다. 철제 농기구가 퍼져 농업과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다.
진 효공에게 등용된 상앙이 법가 사상에 따라 군공 작위·현제·연좌제 등을 시행해 진이 부국강병을 이루는 바탕을 놓았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마가다의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파탈리푸트라를 도읍으로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를 세웠다.
고조선은 왕을 칭하며 연과 맞섰으나, 기원전 3세기 초 연의 장수 진개의 공격으로 서쪽 땅 2천여 리를 잃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인도 대부분을 통일하고, 칼링가 정복의 참상을 뉘우쳐 불교에 귀의한 뒤 다르마(법)에 의한 통치를 펴고 불교를 널리 퍼뜨렸다.
진나라가 전국 시대의 여섯 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처음 통일했다. 시황제가 문자·화폐·도량형을 통일했다.
진시황이 죽은 이듬해 변방으로 끌려가던 농민들이 진승·오광을 따라 일어났다. 반란이 전국으로 번져 진은 통일 15년 만에 무너졌다.
진이 무너진 뒤 초의 항우와 한왕 유방이 천하를 다투었다. 해하 전투에서 이긴 유방이 황제에 올라 한을 세우고 장안에 도읍했다.
연에서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넘어온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쫓겨난 준왕은 남쪽으로 가 한왕이라 했다.
한 무제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흉노 정벌·남월 정복·고조선 원정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다. 늘어난 전비는 소금·철 전매와 균수·평준법으로 메웠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하려고 장건을 대월지에 보냈다. 동맹은 이루지 못했으나 서역이 알려지면서 중국과 서아시아·지중해를 잇는 비단길이 열렸다.
한 무제의 침공으로 왕검성이 함락되고 고조선이 멸망했다. 한은 그 땅에 낙랑군 등 네 군을 두었다.
사마천이 전설의 황제(黃帝)부터 한 무제까지의 역사를 본기·열전 중심의 기전체로 엮은 『사기』를 완성했다.
외척 왕망이 전한의 제위를 빼앗아 신(新)을 세우고 토지 국유화 같은 복고적 개혁을 폈으나, 혼란과 농민 봉기 속에 15년 만에 무너졌다.
한 왕실의 후손 유수(광무제)가 신 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황제에 올라 낙양에 도읍하고 한을 다시 세웠다(후한).
모든 중생의 구제를 내세운 대승 불교가 일어나고, 쿠샨 왕조 아래 간다라 지방에서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 처음 만들어졌다.
1세기 무렵 불교가 비단길을 따라 중국에 들어왔다. 후한 명제 때 낙양에 백마사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천·그물로 값싸고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105년 황제에게 바쳤다.
대월지에서 일어난 쿠샨 왕조가 중앙아시아와 북인도를 아울렀다. 카니슈카왕 때 전성기를 맞아 비단길 교역을 쥐고 불교를 보호했다.
태평도의 장각이 누런 두건을 두른 농민을 이끌고 후한에 맞서 일어났다. 난은 그해에 꺾였으나 진압에 나선 지방 세력이 군벌로 자라 삼국 시대의 막이 올랐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헌제에게서 제위를 넘겨받아 위를 세웠다. 400년 넘게 이어진 한 왕조가 끝나고 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불교를 연 성자(기원전 6–5세기 무렵). 샤카족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로, 출가해 깨달음을 얻고 평생 가르침을 폈다
마우리아 왕조를 연 왕(재위 기원전 322 무렵–298 무렵).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북인도를 처음 하나로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