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오광의 난과 진의 멸망
다른 이름: 대택향 봉기
진시황이 죽은 이듬해 변방으로 끌려가던 농민들이 진승·오광을 따라 일어났다. 반란이 전국으로 번져 진은 통일 15년 만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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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순행 중 사구에서 죽자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가 유언을 고쳐 맏아들 부소를 죽게 하고 호해를 2세 황제로 세웠다. 대규모 토목 공사와 가혹한 법에 시달리던 백성의 불만은 더 커졌다. 기원전 209년 변방 수비에 끌려가던 농민 9백여 명이 큰비로 기한에 늦게 되자—진의 법으로는 사형이었다—진승과 오광이 대택향에서 이들을 이끌고 일어났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진승의 말이 전한다.
진승은 진(陳)에서 장초를 세우고 왕을 칭했으나 반년 만에 무너졌다. 그러나 반란은 옛 여섯 나라 땅으로 번졌고, 초의 항우와 유방이 그 중심이 되었다. 항우는 기원전 207년 거록에서 진의 주력군을 무찔렀고, 유방이 먼저 함양에 들어가자 진왕 자영이 항복해 진은 멸망했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대규모 농민 봉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