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

Raphael · Public domain · 원본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

Raphael · Public domain · 원본
| 연도 | 나라 | 사건 | 핵심 |
|---|---|---|---|
| 11세기 말–13세기 | 이탈리아 · 프랑스 | 대학과 스콜라 철학 | 볼로냐·파리 대학, 아퀴나스 『신학 대전』 |
| 12–14세기 | 북독일 · 북이탈리아 | 도시 성장 · 한자 동맹 | 특허장·자치권, 길드, 뤼베크 중심 |
| 1122 | 신성 로마 제국 | 보름스 협약 | 서임권 투쟁 종결 → 교황권 강화 |
| 1198–1216 | 교황령 | 인노켄티우스 3세 | "교황은 해, 황제는 달" — 교황권 절정 |
| 1215 | 잉글랜드 | 마그나 카르타 | 존 왕, 귀족 동의 없는 과세 금지 |
| 1295 | 잉글랜드 | 모범 의회 | 에드워드 1세, 기사·시민 대표 참여 |
| 1302 · 1303 | 프랑스 | 삼부회 · 아나니 사건 | 필리프 4세 vs 보니파키우스 8세 |
| 1309–1377 | 교황령 · 프랑스 | 아비뇽 유수 | 교황청이 프랑스 왕의 영향 아래 |
| 1337–1453 | 잉글랜드 · 프랑스 | 백년 전쟁 | 왕위·플랑드르, 잔 다르크 → 중앙 집권 |
| 1347–1351 | 유럽 | 흑사병 | 인구 1/3 이상 감소 → 농노 지위 상승 |
| 14–16세기 | 이탈리아 | 르네상스 | 인문주의, 메디치 후원, 다빈치·미켈란젤로 |
| 1378–1417 | 교황령 | 교회의 대분열 | 로마·아비뇽 교황, 콘스탄츠 공의회·후스 |
| 1450 무렵 | 독일 | 구텐베르크 인쇄술 | 42행 성서 (고려 직지 1377보다 늦음) |
| 1455–1485 | 잉글랜드 | 장미 전쟁 | 귀족 몰락 → 튜더 왕조(헨리 7세) |
| 1480 | 모스크바 대공국 | 몽골 지배 종식 | 이반 3세, 차르 칭호·"제3의 로마" |
| 1479 · 1492 | 에스파냐 | 에스파냐 성립 · 그라나다 함락 | 레콩키스타 완료 → 콜럼버스 후원 |
성직자 임명권(서임권)을 두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 다투다 파문당한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가 1077년 1월 카노사성에서 용서를 빌었다.
11세기 말부터 볼로냐·파리·옥스퍼드에 교수와 학생의 조합인 대학이 생겼고, 신앙을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스콜라 철학이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원정.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11세기 뒤 농업 생산과 원거리 무역이 늘자 유럽 곳곳에 상공업 도시가 자라 영주에게서 자치권을 얻었고, 북해·발트해의 독일 도시들은 한자 동맹을 맺었다.
1122년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가 보름스에서 협약을 맺어, 성직자 임명을 둘러싼 서임권 투쟁이 일단 끝났다.
12세기 중엽 파리 근처 생드니 수도원에서 시작된 고딕 양식은 뾰족한 아치와 높은 첨탑, 넓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샤르트르·노트르담 같은 대성당을 낳았다.
1198년 교황이 된 인노켄티우스 3세는 "교황은 해, 황제는 달"이라며 잉글랜드·프랑스 왕과 신성 로마 황제를 굴복시켜 교황권을 절정에 올렸다.
이집트로 가려던 십자군이 베네치아에 진 빚 때문에 방향을 틀어 같은 그리스도교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약탈하고 라틴 제국을 세웠다.
잉글랜드 귀족들이 존 왕에게 대헌장을 받아 냈다. 왕도 법 아래에 있다는 생각의 출발점이 되었다.
1295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귀족·성직자와 함께 주의 기사와 도시의 시민 대표까지 불러 모은 의회로, 뒤 의회의 본보기가 되었다.
1302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맞서려고 성직자·귀족·평민 대표를 모아 처음으로 삼부회를 열었다.
피렌체에서 쫓겨난 시인 단테가 1308년 무렵부터 1321년까지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말로 『신곡』을 써서, 이탈리아어 문학과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청이 로마를 떠나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 머물며 프랑스 왕의 영향을 받았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부른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프랑스 왕위와 플랑드르·기옌 지방을 두고 벌인 전쟁. 프랑스가 이겨 잉글랜드는 칼레만 남기고 대륙에서 물러났다.
1346년 8월 26일 에드워드 3세의 잉글랜드군이 장궁병을 앞세워 프랑스 기사군을 크게 무찔렀다.
페스트가 유럽 전역에 퍼져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도시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되살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인문주의 문화가 꽃피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이를 후원했다.
흑사병 뒤 영주들이 농민을 다시 옭아매고 전쟁 세금을 무겁게 거두자, 프랑스에서 자크리의 난(1358), 잉글랜드에서 와트 타일러의 난(1381)이 일어났다.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심체요절을 금속 활자로 찍었다. 오늘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1378년부터 1417년까지 로마와 아비뇽에 교황이 따로 서서 서유럽 교회가 둘로(한때 셋으로) 갈라졌다. 콘스탄츠 공의회가 새 교황을 뽑아 끝냈다.
1415년 7월 6일 교회를 비판한 보헤미아의 신학자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어 화형당했고, 이는 후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1429년 5월 농민 소녀 잔 다르크가 이끈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의 오를레앙 포위를 풀었고, 샤를 7세는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렸다.
15세기 플랑드르의 회화에서 시작된 알프스 북쪽의 르네상스는 성서와 초기 교회로 돌아가자는 크리스트교 인문주의로 나아가, 에라스뮈스가 『우신 예찬』(1511)으로 교회를 풍자했다.
1450년 무렵 독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와 인쇄기로 책을 대량으로 찍는 방법을 펼쳐 『42행 성서』를 찍었다.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을 퍼뜨렸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를 정복했다. 중세의 끝을 알리는 사건으로 꼽힌다.
1455년부터 1485년까지 잉글랜드의 랭커스터 가문(붉은 장미)과 요크 가문(흰 장미)이 왕위를 두고 싸웠다.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어 끝났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1469년 결혼하고 1479년 페르난도가 아라곤 왕이 되면서 두 나라가 하나로 묶여 에스파냐 왕국이 생겼다.
1480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우그라강에서 대오르다의 아흐마트 칸과 맞서 물러나게 하면서, 240년 가까이 이어진 몽골(타타르)의 지배가 끝났다.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바하마 제도에 닿았다.
1492년 1월 2일 에스파냐의 가톨릭 공동 왕이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를 정복해, 약 800년에 걸친 국토 회복 운동(레콩키스타)이 끝났다.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