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리의 난과 와트 타일러의 난
다른 이름: 농민 반란, 자크리, 와트 타일러의 난
흑사병 뒤 영주들이 농민을 다시 옭아매고 전쟁 세금을 무겁게 거두자, 프랑스에서 자크리의 난(1358), 잉글랜드에서 와트 타일러의 난(1381)이 일어났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흑사병으로 일손이 줄자 농민의 임금과 처우가 나아졌으나, 영주들은 임금을 묶고 부역을 되살리려 했다. 프랑스에서는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왕이 사로잡힌 뒤 귀족의 약탈과 세금이 겹치자, 1358년 5월 파리 북쪽 보베 지방의 농민들이 성을 습격했다(자크리는 농민을 낮춰 부르던 "자크"에서 온 이름). 반란은 한 달도 못 되어 귀족들에게 진압되었다.
잉글랜드에서는 백년 전쟁 비용을 대려고 인두세를 거두자, 1381년 6월 와트 타일러가 이끄는 농민들이 런던으로 들어왔다. 설교자 존 볼은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길쌈할 때 누가 귀족이었나"라고 외쳤다. 열네 살의 리처드 2세는 농노 해방을 약속했으나, 타일러가 협상 중 살해되자 약속을 거두고 반란을 진압했다.
반란은 실패했지만 영주들은 예전처럼 농노를 부리기 어려워졌고, 잉글랜드에서는 15세기에 농노제가 거의 사라져 독립 자영 농민(요먼)이 늘었다. 이 무렵 고려는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