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1378 ~ 1417년

교회의 대분열

다른 이름: 서방 교회의 대분열, 콘스탄츠 공의회

1378년부터 1417년까지 로마와 아비뇽에 교황이 따로 서서 서유럽 교회가 둘로(한때 셋으로) 갈라졌다. 콘스탄츠 공의회가 새 교황을 뽑아 끝냈다.

콘스탄츠 공의회의 교황 선출(1417년 11월) — 마르티누스 5세가 뽑혀 대분열이 끝났다, 『리헨탈 연대기』 삽화, 1464년 무렵
콘스탄츠 공의회의 교황 선출(1417년 11월) — 마르티누스 5세가 뽑혀 대분열이 끝났다, 『리헨탈 연대기』 삽화, 1464년 무렵

Chronik des Ulrich Richental · Public domain · 원본

137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로마에서 죽자 로마 시민들의 압력 속에 이탈리아인 우르바누스 6세가 뽑혔다. 그러자 프랑스인 추기경들은 선거가 무효라며 클레멘스 7세를 따로 세웠고, 그는 아비뇽으로 돌아갔다. 프랑스·스코틀랜드·나폴리 등은 아비뇽을, 잉글랜드·신성 로마 제국 대부분은 로마를 지지해 유럽이 둘로 갈렸다. 1409년 피사 공의회가 두 교황을 폐위하고 새 교황을 뽑았으나 둘 다 물러나지 않아 교황이 셋이 되었다.

독일 왕 지기스문트의 주도로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는 세 교황을 물러나게 하고 1417년 11월 마르티누스 5세를 뽑아 분열을 끝냈다. 이 공의회는 위클리프와 후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기도 했다. 공의회가 교황보다 위에 있다는 주장(공의회주의)이 힘을 얻었고, 교황의 권위는 크게 떨어져 종교 개혁의 토양이 되었다. 대분열이 시작되기 한 해 전(1377) 고려의 청주 흥덕사에서는 『직지심체요절』이 금속 활자로 인쇄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378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교황령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관련 장소
로마, 아비뇽 교황청 궁전, 콘스탄츠

관련 인물

  • 위클리프1384년

    관련자 · 잉글랜드 옥스퍼드의 신학자. 교회의 부와 교황권을 비판하고 성경을 영어로 옮기게 해 종교 개혁의 선구자로 꼽힌다

하위 사건 1건

  1. 1415년 7월 6일 교회를 비판한 보헤미아의 신학자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어 화형당했고, 이는 후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1077년 – 151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