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바하마 제도에 닿았다.

「콜럼버스의 상륙」 — 존 밴더린 그림, 1847년, 미국 국회 의사당
「콜럼버스의 상륙」 — 존 밴더린 그림, 1847년, 미국 국회 의사당

John Vanderlyn · Public domain · 원본

15세기 유럽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으로 동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향신료 같은 동방 물산은 오스만 제국과 이탈리아 상인을 거치며 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에, 직접 아시아로 가는 새 항로를 찾으려 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길을 개척하는 동안, 제노바 출신의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건너는 편이 아시아에 더 빨리 닿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의 계획은 포르투갈에서 거절당했으나, 그라나다를 정복해 레콩키스타를 마친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후원했다. 1492년 8월 배 세 척으로 팔로스 항을 떠난 그는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닿아 산살바도르라 이름 붙였다. 이어 쿠바와 히스파니올라섬을 탐사했고, 이후 세 번 더 항해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을 아시아라고 믿었다.

뒤이어 들어온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아스테카와 잉카 제국을 무너뜨렸다. 유럽에서 들어온 천연두 같은 전염병과 가혹한 노동으로 원주민 인구가 크게 줄었고, 그 노동력을 메우려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이 커졌다. 작물·가축·병이 두 세계를 오간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감자·옥수수 등이 세계로 퍼졌다.

유럽 중심의 세계 무역이 시작되고 상업 혁명과 가격 혁명이 일어나,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아메리카에서 온 고추·담배·고구마 등은 훗날 조선에도 들어왔다.

지도에서 보기

1492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에스파냐 · 후원국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479년 에스파냐 왕국의 성립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세 유럽의 변화와 르네상스1077년 – 151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종교 개혁 직전까지 — 절정에 올랐다 꺾인 교황권, 도시와 의회, 백년 전쟁과 흑사병 속에 자란 왕권, 그리고 르네상스와 인쇄술

  • 대항해 시대1415년 – 1600년

    세우타 점령부터 마닐라 갤리온까지 — 유럽의 배가 대양을 건너 세계를 하나의 바닷길로 이은 2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