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십자군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원정.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11세기 셀주크 튀르크는 바그다드에 들어가 아바스 칼리프에게서 술탄 칭호를 받고,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군을 무찔러 소아시아로 밀고 들어왔다. 위협을 느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서방에 원병을 청하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회복을 호소했다. 교황은 동서 교회를 다시 하나로 묶고 교황권을 높이려 했고, 영지를 바라는 기사, 동방 무역을 노린 상인, 죄 사함과 새 삶을 바란 농민이 저마다 호응했다.
먼저 떠난 민중의 무리 가운데 일부는 라인란트에서 유대인을 학살했고, 은자 피에르를 따른 무리는 1096년 소아시아에서 셀주크군에게 전멸했다. 뒤이어 프랑스·노르만 제후들이 이끈 기사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모여 니케아(1097)와 안티오키아(1098)를 거쳐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슬람 세계가 셀주크 세력과 파티마 왕조로 나뉘어 다투고 있었던 것이 십자군에게 유리했다.
정복지에는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십자군 국가들이 섰다. 그러나 십자군은 빼앗은 땅을 비잔티움에 돌려주지 않아 두 세계 사이에 불신이 쌓였고, 이슬람 세계는 차츰 지하드(성전)를 내걸고 맞섰다. 제1차 십자군은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차지한 유일한 원정이었고, 이후 약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