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켄티우스 3세와 교황권의 절정
다른 이름: 교황권의 전성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1198년 교황이 된 인노켄티우스 3세는 "교황은 해, 황제는 달"이라며 잉글랜드·프랑스 왕과 신성 로마 황제를 굴복시켜 교황권을 절정에 올렸다.

Carlo Raso · Public domain · 원본
30대의 젊은 나이에 교황이 된 인노켄티우스 3세는 교황의 권위는 해와 같고 왕의 권력은 그 빛을 받는 달과 같다고 했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 다툼에 끼어들어 황제를 세우고 파문하며 끝내 프리드리히 2세를 밀었고, 아내를 버린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를 성무 금지로 눌러 왕비를 다시 맞게 했다.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을 거부한 잉글랜드의 존 왕을 파문하자, 존 왕은 1213년 잉글랜드를 교황에게 바쳤다가 봉토로 돌려받았다.
그는 제4차 십자군과 남프랑스의 알비파를 치는 십자군을 일으켰고,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열어 해마다 고해하게 하는 등 교리와 교회 제도를 정비했다. 청빈을 내세운 프란체스코회도 그가 인가했다. 그러나 교황권은 14세기 초 아나니 사건과 아비뇽 유수로 크게 꺾였다. 같은 때 고려에서는 최충헌이 무신 정권을 굳혔고(1196), 그의 노비 만적이 신분 해방을 꾀했다(1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