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

Jean-Pierre Houël · Public domain · 원본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

Jean-Pierre Houël · Public domain · 원본
| 기간 | 정부 | 권력 | 끝 |
|---|---|---|---|
| 1789 – 1791 | 국민 (제헌) 의회 | 왕과 의회 — 제3 신분과 자유주의 귀족 | 1791년 헌법 |
| 1791 – 1792 | 입법 의회 (입헌 군주제) | 거부권 지닌 왕, 재산 있는 남성이 뽑은 의회 | 8월 10일 튈르리 습격 |
| 1792 – 1795 | 국민 공회 (제1 공화정) | 지롱드파 → 산악파·공안 위원회(공포 정치) | 혁명력 3년 헌법 |
| 1795 – 1799 | 총재 정부 | 다섯 총재와 양원 — 바라스 |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
| 1799 – 1804 | 통령 정부 | 제1 통령 나폴레옹 |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
빚더미에 오른 왕정이 귀족·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매기려 명사회를 불렀으나, 특권 신분이 거부하면서 개혁이 막혔다.
175년 만에 열린 삼부회에서 표결 방식을 두고 신분 사이가 갈라졌고, 제3 신분은 스스로 국민 의회를 선포했다.
회의장이 닫히자 제3 신분 대표들이 근처 실내 테니스장에 모여, 헌법을 만들 때까지 흩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농촌의 봉기에 놀란 국민 의회가 밤샘 회의에서 영주의 특권과 십일조, 관직 매매를 없애기로 결의했다.
국민 의회가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선언하고, 국민 주권과 권력 분립을 내걸었다.
빵값에 성난 파리의 여성들이 베르사유로 걸어가 왕궁에 들이닥쳤고, 왕 일가를 파리 튈르리 궁전으로 데려왔다.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인 시작이다.
시민 혁명으로 절대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세워졌다.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이 퍼졌다.
루이 16세 일가가 몰래 파리를 빠져나가 국경으로 달아나다 바렌에서 붙잡혔다. 왕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왕의 폐위를 요구하는 청원에 모인 군중에게 국민 방위대가 발포했다. 혁명파가 입헌 왕정파와 공화파로 갈라졌다.
프랑스의 첫 성문 헌법이 입헌 군주제를 세웠다. 왕은 거부권을 지녔고, 선거권은 세금을 내는 남성에게만 주었다.
파리 민중과 지방 의용병이 튈르리 궁전을 습격해 스위스 근위대를 무찔렀다. 왕권이 정지되고 왕정이 무너졌다.
혁명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파리로 다가오던 프로이센군을 혁명군이 발미에서 막아 냈다.
남성 보통 선거로 뽑힌 국민 공회가 첫 회의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이튿날부터 「공화국 1년」으로 날을 세었다.
국민 공회가 「시민 루이 카페」에게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했고, 왕은 혁명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30만 명 징집령에 맞서 프랑스 서부의 농민들이 왕과 가톨릭을 내걸고 일어났다. 진압과 보복으로 수십만이 죽었다.
지롱드파를 지지한 샤를로트 코르데가 욕조에 있던 마라를 찔러 죽였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그를 혁명의 순교자로 만들었다.
안팎의 위기 속에 공안 위원회가 「공포를 일상의 질서로」 삼아 혐의자를 잡아들였다. 1만 7천여 명이 공식 처형되었다.
콩시에르주리에 갇혀 있던 왕비가 혁명 재판소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튿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로베스피에르가 무신론적 「이성 숭배」 대신 최고 존재와 영혼 불멸을 받드는 국가 축제를 열었다. 다비드가 연출했다.
자신들도 숙청될까 두려워한 의원들이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해 처형했다. 공포 정치가 끝나고 혁명은 온건한 쪽으로 돌아섰다.
혁명력 3년 헌법으로 다섯 총재와 양원제 의회가 나라를 이끌었다. 좌우의 반란과 쿠데타 속에 군대에 기대게 되었다.
영국과 인도의 길을 끊으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쳤다. 피라미드 전투에서 이겼지만 나일 해전에서 함대를 잃고 고립되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시에예스와 손잡고 총재 정부를 무너뜨렸다. 통령 정부가 서고, 그가 제1 통령이 되었다.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귀족. 혁명 초 파리 국민 방위대 사령관으로 인권 선언 초안을 냈으나, 1792년 나라 밖으로 달아나다 오스트리아군에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