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791년 7월 17일

샹드마르스 학살

다른 이름: 샹드마르스 발포 사건

왕의 폐위를 요구하는 청원에 모인 군중에게 국민 방위대가 발포했다. 혁명파가 입헌 왕정파와 공화파로 갈라졌다.

샹드마르스의 발포, 1791년 7월 17일 — 장루이 프리외르 그림, 피에르가브리엘 베르톨 판화, 『프랑스 혁명 역사화집』
샹드마르스의 발포, 1791년 7월 17일 — 장루이 프리외르 그림, 피에르가브리엘 베르톨 판화, 『프랑스 혁명 역사화집』

Pierre Gabriel Berthault / After Jean-Louis Prieur · Public domain · 원본

바렌 도주 뒤 의회가 왕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자, 코르들리에 클럽 등은 왕의 폐위를 요구하는 청원을 마련했다. 1791년 7월 17일 수천 명이 샹드마르스의 「조국의 제단」에 모여 서명했다. 파리 시장 바이이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라파예트가 이끈 국민 방위대가 돌을 던지는 군중에게 발포해 수십 명(약 50명이라는 기록이 흔하다)이 죽었다.

이 일로 입헌 군주제를 지키려는 쪽(푀양파)과 공화정을 바라는 쪽이 완전히 갈라졌다. 당통·마라 같은 급진파는 한동안 숨거나 달아나야 했고, 라파예트와 바이이는 민중의 신망을 잃었다.

지도에서 보기

179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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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샹드마르스, 파리

관련 인물

  • 라파예트1757년 – 1834년

    지휘관 ·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귀족. 혁명 초 파리 국민 방위대 사령관으로 인권 선언 초안을 냈으나, 1792년 나라 밖으로 달아나다 오스트리아군에 붙잡혔다

  • 조르주 당통1759년 – 1794년

    관련자 · 혁명가·웅변가. 1792년 법무 장관으로 왕정 타도 뒤의 위기를 이끌었고, 공포 정치의 완화를 주장하다 1794년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91년 바렌 도주
이후 사건
1791년 1791년 헌법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