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91년 6월 20일 – 25일

바렌 도주

다른 이름: 바렌 사건, 국왕 일가의 도주

루이 16세 일가가 몰래 파리를 빠져나가 국경으로 달아나다 바렌에서 붙잡혔다. 왕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바렌에서 붙잡힌 루이 16세 일가 — 장루이 프리외르 그림, 판화, 1790년대, 프랑스 국립 도서관
바렌에서 붙잡힌 루이 16세 일가 — 장루이 프리외르 그림, 판화, 1790년대, 프랑스 국립 도서관

Cheur (17..-1... ; graveur). Graveur Prieur, Jean-Louis (1759-1795). Dessinateur du modèle · Public domain · 원본

혁명이 교회 개혁(성직자 시민 헌장)까지 나아가자 루이 16세는 파리를 떠나 동쪽 국경의 왕당파 군대에 의지하기로 했다. 1791년 6월 20일 밤 왕 일가는 변장하고 튈르리 궁전을 빠져나가 몽메디로 향했다. 그러나 큰 마차는 늦어졌고, 생트므누에서 역장 드루에가 왕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6월 21일 밤 일행은 바렌앙아르곤에서 붙잡혀 25일 침묵하는 군중 사이로 파리에 돌아왔다.

의회는 왕이 「납치되었다」고 꾸며 입헌 군주제를 지키려 했지만, 왕이 혁명을 버리고 외국으로 가려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왕정을 없애고 공화정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고,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은 8월 필니츠 선언으로 왕을 돕겠다고 위협했다.

지도에서 보기

179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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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튈르리 궁전, 바렌앙아르곤

관련 인물

  • 루이 16세1754년 – 1793년

    핵심 인물 · 프랑스 국왕. 혁명 중 처형되었다

  • 마리 앙투아네트1755년 – 1793년

    핵심 인물 · 루이 16세의 왕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혁명 중 바렌 도주에 실패하고 1793년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89년 베르사유 행진
이후 사건
1791년 샹드마르스 학살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