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95년 11월 – 1799년 11월 9일
총재 정부
다른 이름: 디렉투아르, 혁명력 3년 헌법, 방데미에르 13일
혁명력 3년 헌법으로 다섯 총재와 양원제 의회가 나라를 이끌었다. 좌우의 반란과 쿠데타 속에 군대에 기대게 되었다.

테르미도르파는 독재를 막으려고 권력을 나눈 혁명력 3년 헌법을 1795년 8월 22일 채택했다. 입법권은 오백인회와 원로원(250명)이 나누고, 행정은 원로원이 뽑는 다섯 총재가 맡았다. 선거권은 다시 재산에 따라 제한되었다. 10월 5일(방데미에르 13일) 파리의 왕당파 봉기를 젊은 장군 나폴레옹이 대포로 진압했고, 국민 공회는 10월 말 해산했다. 바라스 등 다섯 총재는 11월 초 뤽상부르 궁전에 자리 잡았다.
총재 정부는 1796년 바뵈프의 평등파 음모, 1797년 왕당파의 선거 승리를 무효로 한 프뤽티도르 18일 쿠데타처럼 좌우의 도전을 군대의 힘으로 눌렀다. 지폐(아시냐) 폭락과 부패,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이탈리아 원정(1796 – 1797)으로 이름을 떨친 나폴레옹 같은 장군들의 힘이 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