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87년 2월 22일 – 5월 25일

명사회

다른 이름: 귀족의 반란

빚더미에 오른 왕정이 귀족·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매기려 명사회를 불렀으나, 특권 신분이 거부하면서 개혁이 막혔다.

베르사유의 명사회, 1787년 — 장미셸 모로(아들)의 소묘, 1787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베르사유의 명사회, 1787년 — 장미셸 모로(아들)의 소묘, 1787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Jean-Michel Moreau · CC0 · 원본

7년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 지원으로 프랑스 왕정의 빚은 크게 불어나 있었다. 1786년 재정 총감 칼론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토지에 세금을 매기는 개혁안을 마련하고, 고등 법원을 거치지 않으려고 왕이 고른 귀족·성직자·고위 관리 144명의 명사회를 불렀다. 명사회는 1787년 2월 22일 베르사유 므뉘플레지르관에서 열렸다.

그러나 명사들은 특권을 내놓지 않았고 개혁은 삼부회만이 승인할 수 있다고 맞섰다. 루이 16세는 4월 칼론을 해임하고 브리엔을 앉혔지만 명사회는 5월 25일 아무 성과 없이 해산되었다. 고등 법원과의 싸움 끝에 왕정은 1788년 8월 이듬해 5월에 삼부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특권 신분이 왕정에 맞선 이 시기를 「귀족의 반란」이라고도 부른다.

지도에서 보기

178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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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므뉘플레지르관

관련 인물

  • 루이 16세1754년 – 1793년

    군주 · 프랑스 국왕. 혁명 중 처형되었다

  • 칼론1734년 – 1802년

    핵심 인물 · 루이 16세의 재정 총감(1783 – 1787). 특권 신분에도 세금을 매기는 개혁안을 명사회에 냈다가 거부당하고 물러났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789년 삼부회 소집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