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789년 8월 26일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다른 이름: 인권 선언, 프랑스 인권 선언

국민 의회가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선언하고, 국민 주권과 권력 분립을 내걸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 돌판처럼 그린 17개 조, 장자크 르바르비에, 1789년, 카르나발레 박물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 돌판처럼 그린 17개 조, 장자크 르바르비에, 1789년, 카르나발레 박물관

Jean-Jacques-François Le Barbier · Public domain · 원본

국민 의회는 헌법에 앞서 원칙을 밝히기로 하고, 라파예트의 초안 등을 바탕으로 1789년 8월 26일 17개 조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채택했다. 제1조는 「인간은 자유롭고 권리에서 평등하게 태어나 살아간다」고 밝혔다. 선언은 자유·재산·안전·압제에 대한 저항을 자연권으로 꼽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법은 일반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죄형 법정주의, 무죄 추정, 표현과 종교의 자유, 권력 분립도 담았다.

계몽사상과 미국 독립 선언의 영향을 받은 이 선언은 근대 인권 사상의 이정표가 되었고, 오늘날 프랑스 헌법의 일부이다. 그러나 여성과 식민지의 노예는 빠져 있었다. 1791년 올랭프 드 구즈는 이에 맞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썼다.

지도에서 보기

178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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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므뉘플레지르관

관련 인물

  • 라파예트1757년 – 1834년

    저자 ·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귀족. 혁명 초 파리 국민 방위대 사령관으로 인권 선언 초안을 냈으나, 1792년 나라 밖으로 달아나다 오스트리아군에 붙잡혔다

  • 미라보1749년 – 1791년

    참여자 · 귀족 출신으로 제3 신분 대표가 된 웅변가. 혁명 초 국민 의회를 이끌며 입헌 군주제를 꾀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789년 베르사유 행진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