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행정 제도의 변천
5부·5방·5주에서 9주 5소경, 5도 양계, 8도를 거쳐 13도까지 — 중앙이 지방을 얼마나 직접 다스리게 되었나

Kim Jeong-ho · Public domain · 원본
5부·5방·5주에서 9주 5소경, 5도 양계, 8도를 거쳐 13도까지 — 중앙이 지방을 얼마나 직접 다스리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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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 | 지방 제도 | 특징 |
|---|---|---|
| 고구려 | 수도 5부, 지방 5부(욕살) | 3경, 지방관이 군대 지휘 |
| 백제 웅진기 (무령왕) | 22담로 | 왕족을 보내 지방 통제 |
| 백제 사비기 (성왕) | 수도 5부, 지방 5방(방령) | 중앙 22부 |
| 신라 (지증왕 ~) | 수도 6부, 지방 주·군 (군주) | 실직주에 첫 군주, 뒤에 5주·소경 |
| 통일 신라 (신문왕) | 9주(도독) 5소경 | 외사정 감찰, 상수리 제도 |
| 발해 (선왕) | 5경 15부 62주 | 말갈 촌락은 토착 수령이 다스림 |
| 고려 초 (태조) | 사심관·기인 제도 | 호족 회유와 견제 |
| 고려 (성종, 983) | 12목에 첫 지방관(목사) | 호족을 향리로 편입 |
| 고려 (현종 ~) | 5도(안찰사)·양계(병마사), 경기 | 속현이 더 많음, 향·부곡·소 |
| 조선 | 8도(관찰사), 모든 군현에 수령 | 향리 지위 하락, 유향소·경재소 |
| 2차 갑오개혁 (1895) | 23부, 고을을 모두 군으로 | 8도 폐지, 지방관 권한 축소 |
| 아관파천 뒤 (1896) | 13도 | 8도를 남북으로 나눔 → 오늘 도의 바탕 |
삼국은 관등제로 귀족을 서열화하고 나라의 큰일은 귀족 회의에서 정했다. 고구려는 대대로와 제가 회의, 백제는 상좌평과 정사암 회의, 신라는 상대등과 화백 회의가 중심이었다.
무령왕이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보내 다스리고 중국 남조의 양과 교류하며 백제를 다시 일으켰다.
지증왕이 나라 이름을 "신라"로, 임금의 칭호를 "왕"으로 정했다. 우경을 권장하고 순장을 금지했다.
성왕이 도읍을 넓은 평야와 금강을 낀 사비(부여)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꾸었다.
신문왕이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두어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를 완성했다.
선왕이 대부분의 말갈을 복속하고 요동으로 나아가 최대 영토를 이루고,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추었다. 당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왕건은 호족을 끌어안으면서 견제하는 정책과 북진 정책을 펴고, 죽기 전 후대 왕들에게 훈요 10조를 남겼다.
성종이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2성 6부의 중앙 제도와 12목을 갖추고, 국자감을 세웠다.
현종 때 4도호부 8목을 중심으로 지방 제도를 고치고 개경 둘레에 경기를 두었다. 이후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와 국경의 군사 행정 구역인 양계가 갖추어졌다.
조선은 의정부와 6조를 중심으로 3사가 권력을 견제하는 중앙 정치 체제와, 8도에 관찰사·수령을 보내는 지방 행정 체제를 갖추었다. 경국대전(1485)으로 법제화되었다.
고종이 종묘에 나아가 개혁의 기본 방향을 담은 홍범 14조를 선포했다. 2차 갑오개혁의 강령이다.
2차 갑오개혁 때 8도를 없애고 전국을 23부로 나누었다가, 아관파천 뒤 다시 13도로 고쳤다. 13도는 오늘의 도 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