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삼국 시대 (3 – 7세기)

삼국의 통치 체제

다른 이름: 제가 회의, 정사암 회의, 화백 회의

삼국은 관등제로 귀족을 서열화하고 나라의 큰일은 귀족 회의에서 정했다. 고구려는 대대로와 제가 회의, 백제는 상좌평과 정사암 회의, 신라는 상대등과 화백 회의가 중심이었다.

삼국은 왕 아래에 여러 등급의 관등을 두어 부족장 출신 귀족을 관리로 편입했다. 고구려는 대대로가 국정을 총괄하고 10여 관등을 두었으며, 제가 회의에서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했다. 백제는 고이왕 때 6좌평과 16관등의 틀을 갖추고 상좌평이 수상 구실을 했으며, 정사암 회의에서 재상을 뽑았다고 전한다. 신라는 17관등을 두고, 상대등이 이끄는 화백 회의가 만장일치로 왕위 계승·전쟁 같은 큰일을 정했다.

지방은 고구려가 5부로 나누어 욕살을, 백제는 사비 시기에 5방으로 나누어 방령을, 신라는 5주로 나누어 군주를 보냈다. 수도는 고구려·백제가 5부, 신라가 6부로 나누었다. 지방관이 그 지역의 군대도 거느려 행정 조직과 군사 조직이 하나였고, 신라는 주마다 군단인 정을 두었다. 고구려의 3경과 신라의 소경은 특별 행정 구역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250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구려 — 중천왕
백제 — 고이왕
신라 — 첨해 이사금

앞뒤 사건

이전 사건
244년 위 관구검의 침입
이후 사건
260년 고이왕의 체제 정비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앙 통치 기구의 변천250년 – 1899년

    제가 회의·화백 회의에서 의정부·비변사, 군국기무처까지 — 귀족의 합의와 왕권 사이에서 중앙 기구가 어떻게 바뀌었나

  • 지방 행정 제도의 변천250년 – 1896년

    5부·5방·5주에서 9주 5소경, 5도 양계, 8도를 거쳐 13도까지 — 중앙이 지방을 얼마나 직접 다스리게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