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유교 정치와 통치 체제 정비
성종이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2성 6부의 중앙 제도와 12목을 갖추고, 국자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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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는 당의 3성 6부를 고쳐 중서문하성(재신·낭사)과 상서성 아래 이·병·호·형·예·공부의 2성 6부를 두었다. 송의 제도를 본뜬 중추원(군사 기밀·왕명 출납)과 삼사(회계)도 두었고, 재신과 추밀이 모여 나라의 큰일을 정하는 도병마사·식목도감은 고려만의 기구였다. 어사대와 중서문하성 낭사는 대간이 되어 서경·간쟁·봉박으로 왕과 관리를 견제했다.
983년 전국 주요 지역에 12목을 두고 처음으로 지방관(목사)을 보냈으며, 호족을 향리(호장·부호장)로 편입했다. 992년 개경에 국자감을 세우고 12목에 경학박사·의학박사를 보냈다. 흑창을 의창으로 넓히고(986) 개경·서경·12목에 상평창을 두었으며, 996년 처음으로 철전 건원중보를 만들었다. 연등회·팔관회는 줄이거나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