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982 – 997년 (재위 981 – 997)

성종의 유교 정치와 통치 체제 정비

성종이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2성 6부의 중앙 제도와 12목을 갖추고, 국자감을 세웠다.

개성 고려 성균관 — 성종이 세운 국자감의 뒤를 이은 최고 교육 기관 자리
개성 고려 성균관 — 성종이 세운 국자감의 뒤를 이은 최고 교육 기관 자리

Nicor · CC BY-SA 3.0 · 원본

중앙에는 당의 3성 6부를 고쳐 중서문하성(재신·낭사)과 상서성 아래 이·병·호·형·예·공부의 2성 6부를 두었다. 송의 제도를 본뜬 중추원(군사 기밀·왕명 출납)과 삼사(회계)도 두었고, 재신과 추밀이 모여 나라의 큰일을 정하는 도병마사·식목도감은 고려만의 기구였다. 어사대와 중서문하성 낭사는 대간이 되어 서경·간쟁·봉박으로 왕과 관리를 견제했다.

983년 전국 주요 지역에 12목을 두고 처음으로 지방관(목사)을 보냈으며, 호족을 향리(호장·부호장)로 편입했다. 992년 개경에 국자감을 세우고 12목에 경학박사·의학박사를 보냈다. 흑창을 의창으로 넓히고(986) 개경·서경·12목에 상평창을 두었으며, 996년 처음으로 철전 건원중보를 만들었다. 연등회·팔관회는 줄이거나 없앴다.

지도에서 보기

98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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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려 — 성종
관련 장소
송악 (개성)

관련 인물

  • 성종960년 – 997년

    주도자 · 고려 제6대 왕.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와 중앙·지방 제도를 갖추었다

  • 최승로927년 – 989년

    참여자 · 신라 6두품 출신의 유학자.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 정치의 틀을 세웠다

하위 사건 1건

  1. 최승로가 성종에게 앞선 다섯 왕의 정치를 평가한 글(5조 정적평)과 함께, 유교 정치의 방향을 담은 시무 28조를 올렸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976년 전시과 제정
이후 사건
993년 거란의 침입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앙 통치 기구의 변천250년 – 1899년

    제가 회의·화백 회의에서 의정부·비변사, 군국기무처까지 — 귀족의 합의와 왕권 사이에서 중앙 기구가 어떻게 바뀌었나

  • 지방 행정 제도의 변천250년 – 1896년

    5부·5방·5주에서 9주 5소경, 5도 양계, 8도를 거쳐 13도까지 — 중앙이 지방을 얼마나 직접 다스리게 되었나

  • 교육 기관의 변천372년 – 1943년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