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백제의 두 번째 도읍 웅진에서 우금치까지 — 금강을 끼고 충청의 중심이 된 고장

백제의 두 번째 도읍 웅진에서 우금치까지 — 금강을 끼고 충청의 중심이 된 고장

장수왕이 3만 군사로 백제의 도읍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무령왕이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보내 다스리고 중국 남조의 양과 교류하며 백제를 다시 일으켰다.
무령왕이 523년 죽자 525년 공주 송산리에 벽돌무덤을 만들어 묻었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백제가 멸망했다.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가 소 주민에 대한 차별과 수탈에 맞서 봉기했다. 정부는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올려 달랬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켜 한양을 점령했다. 인조는 공주로 피란했다.
동학교도들이 처형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을 인정해 달라며 공주·삼례 집회, 복합 상소, 보은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는 "척왜양창의"를 내걸었다.
일본을 몰아내려 다시 일어난 남접·북접 연합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크게 졌다. 전봉준은 순창에서 붙잡혔다.
공주 명학소의 백성. 1176년 동생 망소이와 함께 봉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