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동학 제3대 교주, 천도교를 세웠다.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북접의 통령으로 농민군을 이끌고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우금치 전투에서 싸웠다. 1898년 최시형이 처형된 뒤 교단을 이끌었고,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만세보를 펴내고 보성 학교·동덕 여학교를 인수해 교육 운동을 폈다. 1919년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로 기미 독립 선언서에 서명해 3·1 운동을 이끌었고,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숨졌다. 사위 방정환의 소년 운동을 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