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

대구광역시 중구 · KOGL Type 1 · 원본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

대구광역시 중구 · KOGL Type 1 · 원본
신문왕이 귀족 관리의 녹읍을 없애고, 대신 해마다 곡식(세조)을 나누어 주게 했다.
견훤이 경주를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하자 왕건이 신라를 구하러 나섰으나, 공산 동수에서 후백제군에게 크게 졌다. 신숭겸이 왕건 대신 전사했다.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이 모은 돈으로 갚자는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윤상태·서상일 등이 대구에서 단군을 받드는 비밀 결사 조선 국권 회복단을 만들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3·1 운동에 참여했다.
박상진이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조직했다. 공화 정치를 목표로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 부호를 처단했다.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일요일 등교 지시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