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1907년 2월 –

국채 보상 운동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이 모은 돈으로 갚자는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국채 보상 운동 명부 — 성금을 낸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부
국채 보상 운동 명부 — 성금을 낸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부

고려 · CC BY 4.0 · 원본

일본은 화폐 정리와 시설 개선을 명목으로 대한제국에 차관을 떠안겨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서상돈·김광제 등이 국채 보상을 제안하자, 서울에 국채 보상 기성회가 생기고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제국신문·만세보 등 언론이 앞장섰다.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았다.

통감부는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이 성금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방해했고, 운동은 1년여 만에 중단되었다. 운동의 기록물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0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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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제국 — 고종
일본 — 메이지 일왕
관련 장소
대구

관련 인물

  • 서상돈1850년 – 1913년

    주도자 · 대구의 상인. 김광제와 함께 국채 보상 운동을 제안했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참여자 ·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베델1872년 – 1909년

    관련자 · 영국 언론인.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를 펴냈다.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사건
1907년 신민회

이 사건이 든 테마

  • 대구689년 – 1960년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