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71년 – 1938년

양기탁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1904년 영국인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총무로 일했다. 사장이 영국인이어서 통감부의 검열을 피해 일제의 침략을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었다. 1907년 신보사에 국채 보상 운동의 중심 기관을 두고 모금을 이끌었으나, 통감부가 그를 보상금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뒤에 무죄). 같은 해 안창호 등과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고,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뒤에 만주의 정의부에서 활동했고 임시 정부 국무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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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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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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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이 사장이라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를 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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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 1908년국채 보상 운동참여자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이 모은 돈으로 갚자는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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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 1911년신민회주도자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교육·산업을 일으키고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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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 1913년105인 사건관련자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꾸몄다는 사건을 조작해 신민회 회원 등 600여 명을 잡아들였다. 1심에서 105명이 유죄를 받아 105인 사건이라 한다.

함께 나오는 인물

  • 베델1872년 – 1909년

    영국 언론인.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를 펴냈다.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 안창호1878년 – 1938년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이승훈1864년 – 1930년

    신민회 회원으로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3·1 운동 때 기독교 쪽 민족 대표였다

  • 박은식1859년 – 1925년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 신채호1880년 – 1936년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 서상돈1850년 – 1913년

    대구의 상인. 김광제와 함께 국채 보상 운동을 제안했다

  • 이동녕1869년 – 1940년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년 – 1919년

    마지막 통감이자 초대 조선 총독.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 통치를 폈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평양기원전 194년 – 2007년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

  • 대구689년 – 1960년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