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1년

105인 사건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꾸몄다는 사건을 조작해 신민회 회원 등 600여 명을 잡아들였다. 1심에서 105명이 유죄를 받아 105인 사건이라 한다.

105인 사건으로 붙잡힌 양기탁·김구·윤치호 등의 수형 기록 사진 —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105인 사건으로 붙잡힌 양기탁·김구·윤치호 등의 수형 기록 사진 —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Darkholi · CC BY-SA 4.0 · 원본

1911년 일제는 안악 사건(안명근의 군자금 모금)을 빌미로 황해도·평안도의 기독교인과 신민회 회원을 대거 검거하고 혹독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 냈다. 1912년 1심에서 105명이 유죄를 받았으나 2심에서 대부분 무죄가 되고 윤치호·양기탁 등 6명만 징역을 살았다.

이 사건으로 비밀 결사 신민회가 무너졌다. 신민회는 이미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시작해,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등이 서간도 삼원보에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를 세운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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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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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 통치국 — 메이지 일왕

관련 인물

  •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년 – 1919년

    관련자 · 마지막 통감이자 초대 조선 총독.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 통치를 폈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관련자 ·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안창호1878년 – 1938년

    관련자 ·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이승훈1864년 – 1930년

    관련자 · 신민회 회원으로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3·1 운동 때 기독교 쪽 민족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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