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
다른 이름: 석오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호는 석오. 충청도 천안 목천에서 태어났다. 독립 협회에서 활동하다 만민 공동회 일로 옥고를 치렀고, 1904년 상동 교회의 상동 청년회에서 전덕기 등과 을사늑약 반대 운동을 폈다. 1906년 북간도 용정에서 이상설과 서전서숙을 세웠고,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과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피탈 뒤 이회영 형제와 서간도 삼원보로 옮겨 경학사를 세우고, 신흥 강습소의 초대 소장을 맡았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 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 공화제를 담은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만들었다.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흩어져 임시 정부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국무령·주석 등을 맡아 김구와 함께 정부를 지켰다. 1930년 한국 독립당을 만들어 이사장이 되었고, 1932년 윤봉길 의거 뒤에는 일본의 추적을 피해 항저우에서 치장까지 옮겨 다니는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3월 쓰촨성 치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김구가 유해를 모셔 와 서울 효창 공원에 묻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