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호는 백암.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주자학을 깊이 공부했으나, 독립 협회에 참여하며 개화사상을 받아들였다.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논설을 쓰며 애국 계몽 운동을 이끌었고, 서북 학회를 이끌었다. 1909년 「유교 구신론」에서 백성을 위한 실천적 유교로 바뀌자고 주장하며 대동교를 세웠다.
국권 피탈 뒤 1911년 서간도로 망명해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 등 민족 영웅의 전기를 썼다. 상하이로 옮겨 신규식과 동제사를 이끌었고, 1915년 『한국통사』에서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라며 정신(국혼)이 살아 있으면 나라는 다시 일어난다고 했다. 1920년에는 3·1 운동과 그 뒤의 투쟁을 기록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펴냈다.
1924년 임시 정부의 국무총리 겸 대통령 대리가 되었고, 1925년 3월 이승만이 탄핵되자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제를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고치는 헌법 개정을 이끈 뒤 물러났고, 그해 11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려면 전 민족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유해가 돌아와 국립 서울 현충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