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표 회의
임시 정부의 진로를 놓고 국내외 독립운동 대표들이 상하이에서 회의를 열었다. 창조파와 개조파가 맞서 결렬되었다.
연통제·교통국이 무너지고 외교 활동이 성과를 내지 못한 데다,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에게 국제 연맹의 위임 통치를 청원한 일로 비판이 커졌다. 1923년 1월부터 열린 회의에서 신채호·박용만 등 창조파는 임시 정부를 없애고 새 정부를 세우자고 했고, 안창호 등 개조파는 임시 정부를 고쳐 쓰자고 했다. 합의하지 못한 채 많은 독립운동가가 임시 정부를 떠났다.
임시 의정원은 1925년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제2대 대통령으로 뽑은 뒤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헌법을 고쳤다(초대 국무령 이상룡). 1927년에는 국무 위원 중심의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뀌었고, 김구가 임시 정부를 지키며 한인 애국단으로 돌파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