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23년 4월

형평 운동

다른 이름: 조선 형평사

백정들이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만들어 신분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려는 형평 운동을 벌였다.

갑오개혁(1894)으로 법적인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백정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호적이나 민적에 따로 표시되었고,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따로 앉아야 했으며, 혼인과 일상생활에서도 멸시를 받았다.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백정 이학찬·장지필 등과 강상호 같은 지식인이 조선 형평사를 만들었다. 저울(형, 衡)처럼 공평하게 대우받자는 뜻으로, 취지문에서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고 밝혔다. 형평사는 곧 전국에 지사·분사를 두고 본부를 서울로 옮겼으며, 다른 사회 운동 단체와 손잡았다. 백정에 대한 반감을 가진 농민들이 형평사를 습격하는 반형평 운동도 일어났다.

1930년대에 들어 일제의 탄압과 내부 갈등으로 성격이 바뀌어 1935년 대동사로 이름을 바꾸고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단체가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2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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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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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국민 대표 회의

이 사건이 든 테마

  • 진주685년 – 1923년

    경상 우도의 중심 — 진주성 싸움과 임술 농민 봉기, 백정의 형평 운동이 일어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