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23 – 1925년

3부의 성립과 미쓰야 협정

만주의 독립군이 참의부·정의부·신민부의 3부로 다시 뭉쳐 한인 사회를 다스리며 무장 투쟁을 이어 갔다. 일제는 미쓰야 협정으로 이를 막으려 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 대원들 — 1923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 대원들 — 1923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압록강 건너편의 참의부(1923, 임시 정부 직할), 남만주의 정의부(1924), 북만주의 신민부(1925)는 민정 기관과 군정 기관을 갖추고 한인 사회에서 세금을 걷는 자치 정부 성격을 띠었다.

1925년 조선 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와 만주 군벌 장쭤린이 미쓰야 협정을 맺어, 중국 관리가 독립운동가를 잡아 일본에 넘기면 상금을 주기로 했다.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자 3부 통합 운동이 일어나 북만주의 혁신 의회(1928, 뒤에 한국 독립당·한국 독립군)와 남만주의 국민부(1929, 조선 혁명당·조선 혁명군)로 정리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2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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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중화민국
일본 — 다이쇼 일왕

관련 인물

  • 김좌진1889년 – 1930년

    참여자 · 북로 군정서 총사령관.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고 뒤에 신민부를 이끌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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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
이후 사건
1923년 국민 대표 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