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89년 – 1930년

김좌진

북로 군정서 총사령관.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고 뒤에 신민부를 이끌었다

충청남도 홍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집안의 노비를 풀어 주고 땅을 나누었으며, 고향에 호명 학교를 세웠다. 1911년 독립 자금을 모으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고, 1915년 박상진이 이끈 비밀 결사 대한 광복회에 참여했다.

1917년 무렵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의 북로 군정서 총사령관이 되어 사관 연성소에서 독립군을 길렀다. 1920년 10월 21–26일 청산리 일대(백운평·완루구·어랑촌 등)에서 이범석·홍범도의 부대와 함께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독립군 최대의 승리로 꼽히는 싸움이다.

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을 겪은 뒤 북만주로 돌아와 1925년 신민부를 세우고, 1929년에는 한족 총연합회를 만들어 한인 농민의 자치와 독립군 재건에 힘썼다. 1930년 1월 24일 중동선 산시역 근처 정미소에서 공산주의 청년 박상실의 총에 맞아 숨졌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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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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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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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년 – 1918년대한 광복회참여자

    박상진이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조직했다. 공화 정치를 목표로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 부호를 처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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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청산리 전투지휘관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과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등이 청산리 일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 싸워 일본군에 크게 이겼다. 독립 전쟁사에서 가장 큰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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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 – 1929년3부의 성립과 미쓰야 협정참여자

    만주의 독립군이 참의부·정의부·신민부의 3부로 다시 뭉쳐 한인 사회를 다스리며 무장 투쟁을 이어 갔다. 일제는 미쓰야 협정으로 이를 막으려 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박상진1884년 – 1921년

    대한 광복회 총사령. 공화 정치를 내건 비밀 결사를 이끌다 사형되었다

  • 홍범도1868년 – 1943년

    대한 독립군 사령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세상을 떠났다

  • 이범석1900년 – 1972년

    북로 군정서의 장교로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한국광복군 참모장·제2지대장을 지냈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대구689년 – 1960년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던 달구벌 — 국채 보상 운동과 2·28 학생 시위가 시작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