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925년 6월

조선사 편수회와 식민 사관

다른 이름: 식민 사관, 식민주의 사관

조선 총독부가 조선사 편수회를 두어 "조선사"를 펴내며 정체성론·타율성론·당파성론 같은 식민 사관을 퍼뜨려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3·1 운동 뒤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꺾으려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1922년 조선사 편찬 위원회를 두었다가 1925년 총독 직속의 조선사 편수회로 키워, 1938년까지 35권의 "조선사"를 펴냈다.

식민 사관은 한국사가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고대 사회 단계에 멈춰 있었다는 정체성론,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늘 중국·일본 같은 주변 나라에 휘둘렸다는 타율성론, 조선의 정치가 당파 싸움으로 망했다는 당파성론, 일본과 조선의 조상이 같다는 일선 동조론 등으로 이루어졌다. 고대 일본이 가야 지역을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설도 그 하나다. 모두 한국인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으니 일본의 지배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 박은식·신채호의 민족주의 사학, 백남운의 사회 경제 사학이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비판했고, 진단 학회의 실증 사학과 조선학 운동이 일어났다.

지도에서 보기

1925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일제강점기 조선 —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본 · 통치국 — 다이쇼 일왕
관련 장소
조선 총독부 청사 터

관련 인물

  • 박은식1859년 – 1925년

    관련자 ·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 신채호1880년 – 1936년

    관련자 ·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25년 일본의 보통 선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