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폭탄의 탄생
핵분열의 발견에서 소련의 첫 원자 폭탄까지 — 아인슈타인의 편지, 맨해튼 프로젝트, 트리니티 실험, 히로시마·나가사키와 핵 시대의 시작

Berlyn Brixner /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 Public domain · 원본
핵분열의 발견에서 소련의 첫 원자 폭탄까지 — 아인슈타인의 편지, 맨해튼 프로젝트, 트리니티 실험, 히로시마·나가사키와 핵 시대의 시작

Berlyn Brixner /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 Public domain · 원본
1938년 12월 베를린의 화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중성자를 쏜 우라늄에서 바륨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 망명한 리제 마이트너와 프리슈는 우라늄 원자핵이 둘로 쪼개지며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고 설명했다.
1939년 8월 아인슈타인이 실라르드가 쓴 편지에 서명해,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 폭탄을 만들 수 있으니 미국도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렸다.
일본 해군 항공대가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했다.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이 태평양으로 번졌다(태평양 전쟁).
미국이 영국·캐나다와 함께 원자 폭탄을 만든 비밀 계획. 1942년 그로브스 장군이 지휘를 맡아 오크리지·핸퍼드·로스앨러모스에 비밀 도시를 세웠고, 13만 명 넘는 사람과 20억 달러가 들었다.
1942년 12월 2일 엔리코 페르미가 시카고 대학 운동장 관중석 아래에 흑연과 우라늄을 쌓아 만든 세계 첫 원자로에서, 사람이 일으킨 핵 연쇄 반응이 처음으로 스스로 이어졌다.
1943년 뉴멕시코주 고원의 외딴 마을 로스앨러모스에 원자 폭탄을 설계하는 비밀 연구소가 세워졌다. 오펜하이머가 소장을 맡아 페르미·보어 등 이름난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1945년 7월 16일 새벽 뉴멕시코 사막에서 세계 첫 원자 폭탄 실험이 성공했다. 버섯구름이 12킬로미터 높이로 솟았고, 오펜하이머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힌두 경전의 구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트루먼·스탈린·처칠(뒤에 애틀리)이 포츠담에서 패전 독일의 처리를 정했다. 회담 중 미·영·중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다. 두 도시에서 그해에만 20만 명 넘게 죽었고, 일본은 곧 항복했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여 8월 15일 쇼와 일왕이 라디오로 항복을 알렸다.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호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카자흐스탄의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첫 원자 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의 핵 독점이 4년 만에 깨지며 두 나라의 핵 군비 경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으로 원자 폭탄 개발을 이끌어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전쟁 뒤에는 수소 폭탄 개발에 반대했다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 상대성 이론을 세웠고, 1933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1939년 루스벨트에게 원자 폭탄 개발을 권하는 편지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