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45년 7월 17일 – 8월 2일

포츠담 회담

다른 이름: 포츠담 선언

트루먼·스탈린·처칠(뒤에 애틀리)이 포츠담에서 패전 독일의 처리를 정했다. 회담 중 미·영·중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냈다.

포츠담 회담의 애틀리·트루먼·스탈린 (왼쪽부터) — 1945년 8월 1일
포츠담 회담의 애틀리·트루먼·스탈린 (왼쪽부터) — 1945년 8월 1일

Unknown official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원본

독일이 항복한 뒤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세 나라 정상이 베를린 근처 포츠담의 체칠리엔호프 궁전에서 만났다. 독일의 비군사화·탈나치화·민주화와 네 나라의 분할 점령, 배상, 오데르-나이세강을 폴란드의 새 서쪽 국경으로 삼는 일을 정했다. 영국 총선 결과로 회담 중에 처칠 대신 애틀리가 왔다.

7월 26일에는 미국·영국·중국 이름으로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다시 확인해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회담에서는 동유럽 문제를 두고 미·소의 의견 차이가 뚜렷해졌다.

지도에서 보기

1945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미국 · 체결국 — 대통령 해리 트루먼
영국 · 체결국
소련 · 체결국 — 최고 지도자 스탈린
연합국 점령하 독일
관련 장소
체칠리엔호프 궁전

관련 인물

  • 해리 트루먼1884년 – 1972년

    외교관 · 미국 33대 대통령(1945–1953). 원자 폭탄 투하를 결정했고, 트루먼 독트린으로 소련 봉쇄 정책을 폈으며 6·25 전쟁에 미군을 보냈다

  • 이오시프 스탈린1878년 – 1953년

    외교관 ·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1920년대 말부터 죽을 때까지 소련을 다스렸다. 독소 전쟁을 이끌었고, 전후 동유럽을 소련 세력권으로 묶었다

  • 윈스턴 처칠1874년 – 1965년

    외교관 · 영국 총리(1940–1945, 1951–1955). 영국 본토 항공전을 이끌며 끝까지 항전했고, 1946년 "철의 장막" 연설로 냉전을 알렸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45년 얄타 회담
이후 사건
1945년 미군정 실시

이 사건이 든 테마

  • 냉전1945년 – 1991년

    얄타 회담에서 소련 해체까지 — 미국과 소련이 이끈 두 진영이 세계를 나누어 맞선 반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