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870년대

개화사상의 형성

다른 이름: 개화 사상, 통상 개화론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이 북학파 실학을 잇고 청을 거쳐 들어온 서양 사정을 받아들여, 문호를 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는 개화사상을 폈다. 이들에게 배운 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이 개화파가 되었다.

19세기 중엽 서양 세력이 밀려오자, 북학파의 이용후생 사상을 이은 일부 지식인은 나라의 문을 열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자고 생각했다.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두 차례 청에 다녀와 서양 세력에 맞서 개혁하는 청의 양무운동을 지켜보았고, 흥선 대원군이 물러난 뒤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했다(통상 개화론). 역관 오경석은 청을 오가며 위원의 "해국도지", 서계여의 "영환지략"처럼 세계 지리와 서양 사정을 다룬 책을 들여왔고, 중인 의관 유홍기(대치)는 이 책들을 함께 읽으며 개화사상을 키웠다.

1870년대 박규수의 사랑방에는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유길준 같은 젊은 양반 자제들이 모여 배웠고, 유홍기는 "백의정승"이라 불리며 김옥균 등을 이끌었다. 이들은 강화도 조약(1876) 뒤 정부의 개화 정책에 참여해 개화파를 이루었고, 임오군란 뒤 개혁의 속도와 방법을 두고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로 나뉘었다. 유홍기는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

지도에서 보기

1870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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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고종

관련 인물

  • 박규수1807년 – 1877년

    주도자 · 박지원의 손자. 평안도 관찰사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고, 뒤에 통상 개화를 주장해 개화파의 스승이 되었다

  • 오경석1831년 – 1879년

    주도자 · 역관. 청을 오가며 "해국도지"·"영환지략" 같은 서양 사정을 다룬 책을 들여와 개화사상의 선구자가 되었다

  • 유홍기1831년

    주도자 · 대치. 중인 의관으로 오경석과 개화사상을 연구하고, 김옥균 등 젊은 개화파를 이끌어 "백의정승"이라 불렸다

  • 김옥균1851년 – 1894년

    참여자 · 급진 개화파.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일본으로 망명했고, 상하이에서 암살되었다

  • 박영효1861년 – 1939년

    참여자 · 철종의 사위인 급진 개화파.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2차 갑오개혁 때 김홍집과 연립 내각을 이끌었다

  • 홍영식1855년 – 1884년

    참여자 · 급진 개화파. 우정총국 총판으로,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죽임을 당했다

  • 유길준1856년 – 1914년

    참여자 · 조사 시찰단·보빙사를 따라가 일본·미국에서 공부했다. 서양 견문을 적은 "서유견문"을 쓰고 갑오·을미개혁에 참여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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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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