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상하이에서 신한 청년당을 만들었다. 1944년 국내에서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했다
1918년 상하이에서 신한 청년당을 만들어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보냈고,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1919년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도쿄에 가서 조선 독립을 당당히 주장했다.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지냈다. 1944년 국내에서 비밀 결사 조선 건국 동맹을 만들었고, 광복 직후 안재홍 등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세워 치안을 맡았다. 1946년 김규식과 좌우 합작 운동을 이끌었으나 1947년 암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