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46년 7월 – 1947년

좌우 합작 운동

여운형과 김규식이 좌우 합작 위원회를 만들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했으나, 냉전과 여운형의 암살로 끝났다.

좌우 합작 위원회를 이끈 김규식 — 1947년, 과도 입법 의원 의장 시절
좌우 합작 위원회를 이끈 김규식 — 1947년, 과도 입법 의원 의장 시절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미소 공동 위원회가 멈추고 단독 정부 수립 주장이 나오자, 중도 세력인 여운형(중도 좌파)과 김규식(중도 우파)이 1946년 7월 미군정의 지원을 받아 좌우 합작 위원회를 만들었다. 10월에는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해 미소 공동 위원회 재개, 토지의 유상 매상·무상 분배, 친일파 처리를 위한 입법 기구의 조례 제정 등을 내세웠다.

한국 민주당 등 우익과 조선 공산당 등 좌익이 모두 7원칙에 반대했다. 미군정은 1946년 12월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을 세우고 김규식을 의장으로 삼았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으로 냉전이 본격화하고 미국이 지원을 거두었으며, 7월 여운형이 암살되면서 좌우 합작 운동은 사실상 끝났다.

지도에서 보기

1946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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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미군정

관련 인물

  • 여운형1886년 – 1947년

    주도자 · 상하이에서 신한 청년당을 만들었다. 1944년 국내에서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했다

  • 김규식1881년 – 1950년

    주도자 ·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갔다. 민족 혁명당에 참여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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