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
효종 때의 영의정. 대동법을 충청도·전라도로 넓히고, 시헌력 채택과 상평통보 주조를 건의했다
서인이었지만 백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 대동법 확대에 힘써, 반대를 무릅쓰고 1651년 충청도, 1658년 전라도 해안 지역에 대동법을 시행하게 했다. 수레와 수차 사용을 권했고, 서양 역법을 받아들인 시헌력이 1653년 채택되었다. 동전을 널리 쓰자고 주장해 상평통보 주조를 건의했다.
효종 때의 영의정. 대동법을 충청도·전라도로 넓히고, 시헌력 채택과 상평통보 주조를 건의했다
서인이었지만 백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 대동법 확대에 힘써, 반대를 무릅쓰고 1651년 충청도, 1658년 전라도 해안 지역에 대동법을 시행하게 했다. 수레와 수차 사용을 권했고, 서양 역법을 받아들인 시헌력이 1653년 채택되었다. 동전을 널리 쓰자고 주장해 상평통보 주조를 건의했다.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땅에 따라 쌀로 내게 했다. 경기도에서 시작해 100년 걸려 전국으로 넓혔다.
김육의 건의로 서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청에서 만든 역법인 시헌력을 받아들였다.



조세·공납·역에서 갑오개혁의 금납화까지 — 땅에 매기는 세금이 늘고 사람·집에 매기는 부담이 줄어든 흐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의 과학 혁명,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의회 정치, 그리고 이성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계몽사상 —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의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