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1653년

시헌력 채택

김육의 건의로 서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청에서 만든 역법인 시헌력을 받아들였다.

시헌력은 명 말 독일 출신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탕약망) 등이 서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만들고 청이 1645년부터 쓴 역법이다. 조선은 그때까지 대통력을 바탕으로 역서를 만들었으나 일식·월식 예보가 자주 어긋났다. 김육은 청에 다녀온 뒤 새 역법을 들여와야 한다고 건의했고, 관상감 관원을 청에 보내 계산법을 배우게 한 끝에 효종 때인 1653년 시헌력을 채택했다.

이는 서학(서양 학문)을 받아들인 이른 예로, 1603년 이광정·권희가 베이징에서 마테오 리치의 세계 지도 "곤여만국전도"를 들여오고, 소현세자가 아담 샬과 교류하고 정두원이 화포·천리경·자명종과 "천문서"를 들여오는 등 17세기에 중국을 거쳐 들어온 서양 문물과 함께 실학의 바탕이 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65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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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효종
청 — 순치제

관련 인물

  • 효종1619년 – 1659년

    군주 · 조선 제17대 왕. 청에 볼모로 갔다 돌아와 북벌을 준비했고,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군을 보냈다

  • 김육1580년 – 1658년

    주도자 · 효종 때의 영의정. 대동법을 충청도·전라도로 넓히고, 시헌력 채택과 상평통보 주조를 건의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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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년 효종의 북벌 추진
이후 사건
1653년 하멜 표류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 과학 혁명·계몽사상과 영국 혁명1543년 – 1796년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의 과학 혁명,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의회 정치, 그리고 이성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계몽사상 —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의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