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649 – 1659년

효종의 북벌 추진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이 즉위하자 어영청을 키우고 송시열·이완 등을 등용해 청을 치려는 북벌을 준비했다. 효종이 죽자 중단되었다.

송시열 초상 — 효종과 함께 북벌을 준비한 서인의 영수 (국보)
송시열 초상 — 효종과 함께 북벌을 준비한 서인의 영수 (국보)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자는 북벌론은 효종 때 나라의 정책이 되었다. 효종은 어영청을 개편해 군사를 늘리고 성곽을 고쳤으며, 송시열 등 서인 산림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청은 이미 중국을 차지해 강성했고, 조선군은 오히려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1654·1658)에 나가 러시아군과 싸웠다. 1659년 효종이 죽으며 북벌은 실행되지 못했다.

북벌론은 서인 정권이 권력을 지키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숙종 때 남인 윤휴가 다시 북벌을 주장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18세기에는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이 나왔다.

지도에서 보기

1649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효종
청 — 순치제

관련 인물

  • 효종1619년 – 1659년

    주도자 · 조선 제17대 왕. 청에 볼모로 갔다 돌아와 북벌을 준비했고,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군을 보냈다

  • 송시열1607년 – 1689년

    참여자 · 서인(노론)의 영수. 효종의 북벌을 도왔고 예송에서 서인의 주장을 이끌었다. 기사환국 때 사약을 받았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사건
1653년 시헌력 채택

관련 작품

  •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제17회 「북벌, 조선의 운명을 가르다」다큐멘터리 · 2009 · KBS 1TV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