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강화 회의
다른 이름: 베르사유 체제
승전국 대표들이 파리에 모여 패전국과 맺을 강화 조약을 정했다. 윌슨·클레망소·로이드 조지가 회의를 이끌었고, 베르사유 체제가 만들어졌다.

Edward N. Jackson (US Army Signal Corps) · Public domain · 원본
1919년 1월 18일 30개 가까운 나라의 대표가 파리에 모였다. 패전국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부르지 않았다. 미국의 윌슨, 프랑스의 클레망소, 영국의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의 오를란도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윌슨은 14개조의 이상을 앞세웠으나, 클레망소는 다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엄한 조건을 요구했고, 영국과 이탈리아도 제 몫을 챙겼다.
회의는 독일(베르사유), 오스트리아(생제르맹), 불가리아(뇌이), 헝가리(트리아농), 오스만 제국(세브르)과 차례로 조약을 맺었다. 민족 자결의 원칙에 따라 동유럽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 등이 생겼으나, 패전국의 식민지와 아랍 지역은 승전국의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이렇게 짜인 국제 질서를 베르사유 체제라 한다.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민족 자결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김규식이 독립 청원서를 냈으나 회의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산둥 이권이 일본에 넘어가자 중국에서는 5·4 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이 낸 인종 평등 조항도 채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