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898년 9월

파쇼다 사건

다른 이름: 파쇼다 위기

아프리카 종단 정책의 영국군과 횡단 정책의 프랑스군이 수단의 파쇼다에서 마주쳤다. 프랑스가 물러나 전쟁은 피했고, 두 나라는 뒤에 손을 잡았다.

파쇼다에서 키치너의 포함으로 다가가는 마르샹의 배 — 1898년 사진
파쇼다에서 키치너의 포함으로 다가가는 마르샹의 배 — 1898년 사진

Unknown, 1898 · Public domain · 원본

이집트를 차지한 영국은 카이로와 케이프타운을 잇는 종단 정책을,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에서 지부티까지 잇는 횡단 정책을 폈다. 그 사이의 수단에서는 1881년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마흐디(구세주)를 자처하며 일으킨 마흐디 운동이 1885년 하르툼을 함락하고 영국의 고든 장군을 죽였다. 영국–이집트군을 이끈 키치너는 1898년 9월 2일 옴두르만 전투에서 마흐디국 군대를 기관총으로 무너뜨렸다.

그 무렵 콩고에서 2년 가까이 행군한 프랑스의 마르샹 부대가 1898년 7월 나일강 상류의 파쇼다에 프랑스 국기를 꽂았고, 9월 키치너의 함대가 도착해 두 군대가 마주 섰다. 전쟁 직전까지 갔으나 국내 문제(드레퓌스 사건)로 흔들리던 프랑스가 11월 물러났다. 수단은 영국–이집트 공동 통치령이 되었고, 두 나라는 1904년 영국–프랑스 협상으로 이집트와 모로코를 서로 인정했다.

지도에서 보기

189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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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영국
프랑스
마흐디국 · 멸망
영국·이집트령 수단 · 수립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국주의와 세계 분할1839년 – 1914년

    탄지마트에서 사라예보까지 — 열강이 서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을 나누어 가지고, 그곳 사람들이 개혁과 저항으로 맞선 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