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다른 이름: 베르사유 강화 조약

연합국과 독일이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맺은 강화 조약. 독일은 전쟁 책임을 지고 영토와 식민지를 잃었으며, 군비를 제한당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윌리엄 오펜, 〈거울의 방에서의 강화 조약 서명〉 — 1919년 6월 28일의 베르사유
윌리엄 오펜, 〈거울의 방에서의 강화 조약 서명〉 — 1919년 6월 28일의 베르사유

William Orpen · Public domain · 원본

1919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이 난 지 꼭 5년 되는 날 독일 대표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조약에 서명했다. 48년 전 독일 제국이 선포된 바로 그 방이었다. 독일은 협상에 끼지 못한 채 조약을 받아들여야 했다.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고(제231조),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 돌려주었으며, 폴란드 회랑과 단치히 자유시가 생겨 동프로이센이 본토와 떨어졌다. 해외 식민지는 모두 잃었다. 육군은 10만 명으로 줄고 징병제·공군·잠수함·전차를 가질 수 없었으며, 라인란트는 비무장 지대가 되었다. 배상금은 1921년 1320억 금마르크로 정해졌다.

독일 사람들은 이를 강요된 조약이라 부르며 크게 반발했다. 무거운 배상은 독일 경제를 짓눌렀고, 조약을 뒤집겠다는 주장은 나치가 세력을 키우는 바탕이 되었다. 미국 상원은 조약 비준을 거부해 미국은 국제 연맹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1919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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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독일 · 패전국
프랑스 · 체결국
영국 · 체결국
미국 · 체결국 — 대통령 우드로 윌슨
이탈리아 · 체결국
일본 · 체결국 — 다이쇼 일왕
관련 장소
베르사유 궁전

관련 인물

  • 조르주 클레망소1841년 – 1929년

    외교관 · 프랑스 총리(1906–1909, 1917–1920). 전쟁 막바지에 나라를 이끌어 "호랑이"라 불렸고, 파리 강화 회의 의장으로 독일에 엄한 조건을 요구했다

  • 우드로 윌슨1856년 – 1924년

    외교관 · 미국 28대 대통령(1913–1921). 1917년 참전을 이끌고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민족 자결주의와 국제 연맹을 내세웠다. 1919년 노벨 평화상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1863년 – 1945년

    외교관 · 영국 총리(1916–1922). 재무 장관으로 사회 보험을 도입했고, 전시 내각을 이끈 뒤 파리 강화 회의에 영국 대표로 나섰다

앞뒤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1908년 – 1923년

    발칸반도의 위기에서 시작해 참호전과 총력전으로 네 제국을 무너뜨린 전쟁, 그 속에서 일어나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낳은 러시아 혁명, 그리고 민족 자결과 국제 연맹을 내건 베르사유 체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