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북학파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을 배우고 소비를 늘려 생산을 자극하자고 했다
박지원에게 배웠고, 1779년 정조가 서얼을 등용할 때 규장각 첫 검서관이 되었다. 청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북학의에서 수레·선박을 쓰고 청과 통상하자고 했으며, 재물을 우물에 비유해 "퍼낼수록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고 해 절약보다 소비를 강조했다.
북학파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을 배우고 소비를 늘려 생산을 자극하자고 했다
박지원에게 배웠고, 1779년 정조가 서얼을 등용할 때 규장각 첫 검서관이 되었다. 청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 북학의에서 수레·선박을 쓰고 청과 통상하자고 했으며, 재물을 우물에 비유해 "퍼낼수록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고 해 절약보다 소비를 강조했다.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이 관직 진출의 차별을 없애 달라고 집단 상소를 올렸다. 서얼은 정조 때 길이 넓어지고 1851년 크게 허통되었다.
청에 다녀온 박제가가 북학의를 써 청의 문물을 배우고 수레와 배를 이용해 상공업을 일으키자고 했다. 소비가 생산을 자극한다며 절약만을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의 과학 혁명,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의회 정치, 그리고 이성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계몽사상 —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의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