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778년

박제가의 북학의

청에 다녀온 박제가가 북학의를 써 청의 문물을 배우고 수레와 배를 이용해 상공업을 일으키자고 했다. 소비가 생산을 자극한다며 절약만을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18세기 후반 서울의 노론 학자들 사이에서 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상공업을 진흥하고 기술을 혁신하자는 중상 학파(이용후생, 북학파)가 나왔다. 유수원은 우서에서 상공업 진흥과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을,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돈다는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박지원은 열하일기와 양반전에서 수레·선박 이용과 양반의 위선 비판을 내세웠다.

박제가는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퍼내면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며 적절한 소비가 생산을 늘린다고 했다.

지도에서 보기

1778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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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정조
청 — 건륭제

관련 인물

  • 박제가1750년 – 1805년

    저자 · 북학파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을 배우고 소비를 늘려 생산을 자극하자고 했다

  • 박지원1737년 – 1805년

    관련자 · 연암.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쓴 실학자

  • 홍대용1731년 – 1783년

    관련자 · 담헌. 북학파 실학자. 의산문답에서 지전설과 무한 우주론을 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778년 안정복의 동사강목

이 사건이 든 테마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 과학 혁명·계몽사상과 영국 혁명1543년 – 1796년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의 과학 혁명,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의회 정치, 그리고 이성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계몽사상 —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의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