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748년 – 1807년
유득공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남북국"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1779년 정조가 서얼을 등용하면서 이덕무·박제가·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첫 검서관이 되었다. 박지원의 영향을 받은 북학파 실학자다. 1784년 발해고에서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 부르며, 고구려 땅을 이은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보았다.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남북국"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1779년 정조가 서얼을 등용하면서 이덕무·박제가·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첫 검서관이 되었다. 박지원의 영향을 받은 북학파 실학자다. 1784년 발해고에서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 부르며, 고구려 땅을 이은 발해를 우리 역사로 보았다.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이 관직 진출의 차별을 없애 달라고 집단 상소를 올렸다. 서얼은 정조 때 길이 넓어지고 1851년 크게 허통되었다.
유득공이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대를 처음으로 "남북국"이라 불렀다.

서기·국사·신집에서 조선상고사까지 — 왕권의 과시, 유교 사관, 자주 의식, 민족주의 사학으로 이어진 역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