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식
다른 이름: 예관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만들고 대동 단결 선언(1917)을 이끌었다. 임시 정부 법무총장·국무총리 대리를 지냈다
호는 예관. 충청도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육군 무관 학교를 나와 장교가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소식에 독약을 먹고 자결하려다 살아났으나 오른쪽 눈을 다쳤고, 이때부터 "흘겨본다"는 뜻의 예관(睨觀)을 호로 썼다고 전한다. 대한 자강회 등에서 계몽 운동을 폈다.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해 쑨원의 중국 동맹회에 들어가 신해혁명에 참여했고, 이 인연으로 중국 혁명 지도자들과 두루 사귀었다. 1912년 박은식 등과 동제사를 만들어 상하이 독립운동의 터를 닦고, 박달 학원을 세워 젊은이를 가르쳤다. 1917년 대동 단결 선언을 이끌어, 순종이 주권을 포기한 순간 그 주권은 국민에게 넘어왔다며 국민 주권에 바탕한 임시 정부를 세우자고 했다. 나라가 망한 까닭과 민족혼을 다룬 『한국혼』을 썼다.
1919년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해 법무총장을 지냈고, 1921년 국무총리 대리 겸 외무총장으로 광저우의 쑨원 호법 정부를 찾아가 임시 정부를 사실상 인정받았다. 1922년 임시 정부가 분열하자 이를 걱정해 25일 동안 음식과 약을 끊었고, 9월 25일 "정부, 정부"를 부르며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