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r0706 (Korean Wikipedia) · CC BY-SA 2.5 · 원본
정순왕후
영조의 계비. 어린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보며 신유박해를 일으켰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옳다고 본 벽파와 가까웠다. 1800년 11살의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며 정조가 만든 장용영을 없애고,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도와 시파·남인을 탄압해 이승훈 등이 처형되고 정약용이 유배되었다. 같은 해 중앙 관청의 노비(공노비) 6만여 명을 해방했다.

Kbr0706 (Korean Wikipedia) · CC BY-SA 2.5 · 원본
영조의 계비. 어린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보며 신유박해를 일으켰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옳다고 본 벽파와 가까웠다. 1800년 11살의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며 정조가 만든 장용영을 없애고,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도와 시파·남인을 탄압해 이승훈 등이 처형되고 정약용이 유배되었다. 같은 해 중앙 관청의 노비(공노비) 6만여 명을 해방했다.
정조가 죽은 뒤 순조·헌종·철종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했다. 삼정이 문란해져 농민 봉기가 잇따랐다.
순조가 내수사와 중앙 관청에 딸린 공노비 6만 6천여 명을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조선 후기 신분제가 흔들리던 흐름을 보여 준다.
정순왕후가 천주교를 금하며 이승훈 등 신자 100여 명을 처형했다. 정약용·정약전 형제는 유배되었다.

